1960
1960년대 뉴욕주 샤완겅크에서 이름을 떨치던 리처드 골드스톤이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서부로 암장 순례를 왔다가 존 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존 길의 한 팔 턱걸이와 수평 버티기 등의 훈련과 고난도 볼더링 등반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카고 대학교로 돌아간 그는 체조 선수들이 링 종목 훈련 시 사용하던 수술용 고무관을 활용하여 트레이닝을 시작하였습니다. 몇 년 뒤 동부로 돌아간 그는 샤완겅크의 고난도 자유등반 루트가 급속히 개척이 되든 시기에 맹활약을 하였습니다.
한편, 체조 선수였던 딕 윌리엄스는 샤완겅크의 가파른 인공등반 루트를 오르기 위해 다양한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급진적인 클라이머들로 한스 크라우스, 보니 프루든, 짐 매카시, 존 스태너드 등을 더 꼽을 수 있는데, 이들 모두 장기간 신체 단련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한스 크라우스는 이후 대통령 직속 체력단련 위원회에서 일했고, 보니 프루든은 전국적 인기를 끌며 여성 최초의 표지모델이 되었습니다.
한편, 캘리포니아주에서 활동하던 클라이머들은 각자 본인들만의 특화된 트레이닝에 집중하였습니다.
데이브 리어릭, 마이크 셰릭은 체조에 열중하였고 제자리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레이턴 코르는 콜로라도주와 요세미티에서 근력 훈련을 하며 등반 준비를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당시 요세미티에서 이름을 알리던 로열 로빈스, 척 프랫, 프랭크 새커러는 일상적인 턱걸이, 팔굽혀펴기 등을 제외하고는 다른 별도의 클라이밍 트레이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짐 브리드웰, 배리 베이츠 역시 선구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 식으로 훈련을 하였습니다. 배리 베이츠는 나무에 걸어둔 슬링에 중지를 하나씩 걸고 턱걸이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트레이닝의 주된 목적은 단지 일주일에 며칠씩 클라이밍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세미티 야영장 캠프에서 지내던 브리드 웰, 베이츠와 같은 인물들은 타지역에서 온 골드스톤이나 애먼트 등에서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골드스톤은 캠프4에 처음으로 철봉을 가져다 놓았으며, 애먼트는 1968년에 처음으로 철봉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애먼트는 1968년에 요세미티에서 고난이도 볼더링 문제를 초등하며 당시에 최고 수준의 볼더링을 선도하였습니다. 애먼트는 또한 슬랙라인을 도입해 균형감각과 집중력을 키우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오늘날 요세미티 클라이밍 문화로 꼽히는 슬랙라이닝은 당시 애컨트가 캠프4의 두 나무 사이에 설치한 15m 슬랙라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더불어 브리드웰 일행은 캠프4에 여러 훈련 도구를 장만했는데 당시에 입심 좋기로 소문이 난 워렌 하딩은 이를 두고 올림픽 선수촌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런 워렌 하딩 역시 여러 날 소요되는 대암벽등반을 준비하면서 고도차 하프돔 정상을 달려 완주하였습니다. 특히 등반을 앞두고는 일주일간 금주를 실천하였습니다. 당시 캠프 4에 설치된 훈련 도구들로 인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 클라이머들은 현대 클라이밍 트레이닝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기초 등반 훈련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반면, 학계나 유럽 산악 스포츠 연구자들에게 클라이밍은 여전히 관심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 세계의 고봉을 올라가는 것은 국위선양으로 오랫동안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클라이밍은 올림픽과 상업적 후원에서 소외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역시 미비하였습니다. 일종의 별난 취미로 여겨졌습니다.
그나마 진행된 연구는 저산소 대기에 노출된 인체의 반응과 적응력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다만 1970년대에 이르러 클라이밍이 꾸준히 대중적인 인기를 끌자, 유럽에서도 암벽등반과 관련이 있는 생리적 스트레스와 부상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77년, 팻 애먼트는 존 길의 평전인 바위의 달인을 출간하였습니다. 특별히 클라이밍 트레이닝에 포커스를 맞춘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존 길의 근력 훈련법을 자세하게 묘사해서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책은 곧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신세대 클라이머들의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바위의 달인은 신체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최고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정신과 자세가 필요한지,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1970-1980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는 전 세계에서 고난도 암벽등반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최초의 클라이밍 대회가 개최된 것도 이때입니다. 이러한 성장은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북미를 중심으로 전례 없는 아이디어와 혁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캠프4, 콜로라도주 볼더시, 뉴욕주 샤완겅크 등지에서 클라이머들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여 자유 등반의 신기원을 열었습니다. 또한 신세대 클라이머들이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존 배커, 짐 콜린스, 크리스천 그리피스, 린 힐, 짐 홀러웨이, 존 롱, 론 커크, 토드 스키너, 앨런 와츠, 토니 야니로 등입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서도 유사한 물결이 일었습니다.
1980년대 초에 프랑스 퐁텐블로 볼더링 암장에서는 처음으로 스포츠클라이머라 불리는 이들이 등장하였습니다.
다음은 스포츠클라이밍의 서막을 연 유럽 등반가들의 이름입니다.
영국에서는 론 포셋, 제리 모펏, 벤 문 등이, 프랑스에서는 쥬베 트뤼부, 앙투안 르메니스트럴, 파트리크 에들링어 등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베르토 보시와 하인츠 마리아처가, 독일에서는 쿠르트 알베르트와 볼프강 귈리히가 맹활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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